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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트럼프 이란내 52곳 공격, 52곳의 의미는? : 이슬람 혁명/이란혁명/미국인 인질사건

 

 

최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명령으로 이란의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암살되었습니다.

 

이에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마네이는

미국이 아끼는 곳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피의 복수를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반격을 한다면

이란 문화에 아주 높은 수준의 중요한 곳 52곳을 매우 신속하고 심각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52곳의 의미는 이란이 오랫동안 인질로 잡아두었던 52명의 미국인 숫자를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이란의 미국인 52명 인질사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79년 이슬람혁명이라고도 하는 이란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이란의 정치체제는

팔라비왕조가 군림하는 사실상의 전제군주정이였습니다.

 

팔라비 왕은 현재의 정치제제를 유지하기위해 이란의 유전을 사유화하고 원유를 싼값에 미국에 넘겨주며

친미주의 노선을 따라 미국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토지개혁, 세속주의 지향, 문맹률 감소, 여성교육 참정권 보장 및 히잡, 차도르 착용금지 등

지금의 이란의 모습과 전혀다른 서구식 세속국가를 지향하는 백색혁명을 주도합니다.

 

1979년 이전 이란 여성들의 모습

 

 

 

현재 이란여성의 모습

 

 

하지만 부패한 팔라비왕조는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이란의 국민들은 배고픔의 시달리게하여 많은 반대파들의 비판을 받습니다.

 

이에 팔라비는 미국의 지원아래 "사바크"라는 친위정보조직을 조직해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숙청을 하게되고

미국과 팔라비왕조에 진절머리가 난 이란 국민들은 1978년 엄청난 규모의 반정부 시위를 일으킵니다.

 

결국 1979년 1월 16일 팔라비왕은 이란을 떠나 해외로 망명하였고 바크티아르가 주도하는 과도정권이 수립되었으나

해외에 망명나갔던 시아파의 최고 성직자였던 호메이니가 돌아오며 바티크아르 정권을 붕괴시키고

그 해 4월 국민투표로 이슬람 원점으로의 회귀를 명분으로하는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혁명을 지원했던 이란 여성들의 여성인권은 구시대로 다시 퇴보하였습니다...

 

 

 

 

인질극의 발발 시작은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이란의 입장을 오판하여

팔레비왕의 미국 입국을 허가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미국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급진강경파는 팔레비왕을 송환하라고 요구하였고 미국이 응하지 않음으로

더욱 과격해진 이란 학생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으로 난입하여 52명의 외교관을 인질로 억류합니다.

 

 

이미 급진강경파가 장악한 이란이 전쟁을 불사하듯 행동하자

미국은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 재미 이란 공적 자산 동결조치 등으로 응수하였고

호메이니와 협상을 시도했으나 원활히 이루어지지않자 공식적으로 이란과 단교하고 미국내 이란 외교관들을 추방하였습니다.

 

 이후 미국은 특수부대를 동원해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인 독수리발톱 작전을 시도하였으나 처참하게 실패하고 자존심만 구겼습니다.

 

 

 로널드레이건 대통령

 

이후 평행선을 달리던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알제리의 중재하에 합의하였고

이란의 호메이니는 카터대통령이 인질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주지않기위해 

 

1981년 1월 20일 지미카터 대통령에서 강한미국을 외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날

 

사건발생 444일 만에 억류된 인질을 전원 석방하여 미국으로 반환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